영월 장릉 (寧越 莊陵)
장릉(莊陵)은 조선 6대 단종(端宗, 재위 1452∼1455)의 무덤이다.
단종(1441~1457)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충신들이 그를 다시 왕으로 복위시키려는 계획이 밝혀져 영월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단종이 죽자 후환이 두려워 시신을 거두는 사람이 없었는데 영월호장 엄흥도가 장사를 지냈다. 중종 이후 조정에서 단종에 대한 제사와 무덤에 대한 의견이 나오게 되어, 선조 때에 이르러 상석·표석·장명등·망주석을 세우게 되었다. 숙종 7년(1681)에 노산군을 노산대군으로 하였고, 숙종 24년(1698)에 복위시켜 이름을 장릉이라 하였다.
김포 장릉 (金浦 章陵)
장릉(章陵)은 조선 16대 인조의 생부인 추존 원종(元宗)과 그의 비 인헌황후 구씨의 능이다.
원종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 정원군으로 용모가 출중하고 태도가 신중했으며, 효성과 우애가 남달라 선조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파주 장릉(坡州 長陵)
장릉(長陵)은 조선16대 임금인 인조(仁祖)와 그 왕비 인열왕후(仁烈王后) 한씨의 합장능(陵)이다.
인조(1595~1649)는 선조(宣祖)의 다섯째 아들인 정원군(추존元宗)의 맏아들로 능양군(綾陽君)에 봉해졌는데 1623년(광해군15년) 인조반정을 통해 왕위에 올랐다. 인조는 27년의 재위기간 동안에 많은 일이 있었는데 이괄의 난(李适의 亂), 정묘호란(丁卯胡亂), 병자호란(丙子胡亂)을 겪은 후 삼전도(三田渡)에서 청태종에게 항복하고 소현(昭顯), 봉림(鳳林) 두 아들을 인질로 보내는 치욕을 당하였다. 1649년(인조27년)에 승하하였다. 인열왕후 한씨는 1610년 혼인하여 효종(孝宗)과 소현세자(昭顯世子), 인평대군(麟坪大君), 용성대군(龍城大君)의 4형제를 낳았으며 42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