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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에서 온 편지 (18)
더페스티벌    2011-05-23 죄회수 3,781 추천수 1 덧글수 2  인쇄       스크랩     신고

 

(본격적인 농사철, 해질 녘 너뱅이들판에서 농부의 손길이 분주합니다. 곧 모내기가 시작되지요)



계절적으로는 소만 그리고 부부의 날이 지났습니다.


본격적으로 모내기를 시작하고 매화밭에는 수확을 앞두고 예초기로 풀베는 소리가

온 계곡을 진동합니다.


온 산하는 연초록이 진초록으로, 신록으로 옷을 두껍게 갈아입기도 합니다.


청보리밭은 이미 반쯤 누렇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유월 초가 되면 들판에 보릿대 태우는 냄새가 코를 진동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5월의 입맛을 돋우는 앵두 얘길 좀 하겠습니다.

 

 

(흥룡마을 개울가에 열린 여자의 입술같은 앵두, 누가 이 앵두를 사랑할 사람 없나요?)

앵두, 그 촌스러운 수줍음의 미학

 


앵두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입술, 우물, 처녀, 사랑,....

일반적으로 대충 이런 것 아닌가요?


유행가에서도 앵두는 보통 이런 의미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통가요인 ‘앵두나무 우물가에’라는 노래가사입니다.

앵두나무 우물 가에 동네 처녀 바람 났네

물동이 호미자루 나도 몰래 내던지고

말만 들은 서울로 누굴 찾아서

이뿐이도 금순이도 단봇짐을 쌌다네.

 

요새 시골에도 앵두나무가 그리 흔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어릴적에는 집집마다 한 나무 정도는 있었는데

언제인지 모르게 다 베어져 나갔습니다.


실제로 우물곁에 있었던 기억도 있었구요,

우물이 없어졌으니 자연스럽게 앵두나무도 없어진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자료를 보니 앵두나무는 생명력이 강하기는 하지만,

물이 많고 햇볕이 잘 드는 곳을 좋아하여 동네 우물가에 많이 심었다고 합니다.


저의 경우엔 앵두는 수줍음의 상징어로 각인이 되어 있습니다.

붉기는 하지만 열매가 작고 시골마을에 자생된 것이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동에 앵두나무 군락지가 있습니다.

섬진강을 내려다 보고 있는 흥룡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울타리, 마당 어디든지 앵두나무 천지입니다.


그러나 앵두가 익어서 떨어지고 있어도 누구도 앵두를 딸 생각은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앵두나무가 고목이고, 키가 커서 쉽게 딸 수 없기 때문이며

노인들만 살고 있기 때문에 딸 생각을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관상용정도로 내 버려두고 있습니다.


업무차 하동시장엘 가니 놀랍게도 앵두가 과일가게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누가 저 수고를 했을까?’하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작은 바구니 한 바구니에 오천원, 큰 바구니는 만원이었습니다. 

 

(소만을 넘기니 보리도 익어갑니다. 곧 보리타는 냄새가 세상을 진동할 것입니다)

 

(고외마을의 멋쟁이 할머니들, 왼쪽에서 두번째 할머니는 80세, 85세 최고참 할머니는 출장중)

 

우리는 함께 산다, 외로움아 저리 물럿거라!


"촌아 울지마!"


몇 년 전 농촌 어린이 일기장에 썼던 글이라고 합니다.


힘을 잃고 점점 어려워져 가는 농촌의 현실을 어린이 눈으로 본 것이지만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농촌의 문제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소득, 경제, 복지, 교육과 같은 드러난 것들이라기 보다는

고령화에 따른 독거노인의 증가, 즉 고독과 외로움이라 봅니다.



우리 하동의 경우, 노인복지 부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탄탄하다고 자평합니다.


노인대학, 노인대학원, 빨랫방, 노래교실, 독거노인 전기.가스 안전점검....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노인들의 숨기고 싶은 적(敵)은 고독이 아닐까합니다.

명절에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스스로 숨을 끊는 노인들에 관한 뉴스가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으니 이를 반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노인과 말벗 되어주기 시책도 추진되고 있지만,

자주 해 봐야 1주에 한 번 꼴,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노인고독 문제,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좋은 의견 있으신 분은 좀 알려주세요.




우선 하동의 해소 방법을 들어보시겠습니까?


흡족할만한 수준은 아직 아닙니다. 그러나 희망을 걸어봅니다.

바로 노인공동주거제입니다.


홀로 사는 노인들이 모여서 공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낮에는 개인적인 일을 하고 자기 집을 돌보기도 하다가

저녁시간이나 일이 없을 때에는 모여 같이 지내는 것입니다.


우선 3개를 오픈했습니다.


지난 수요일,

"가족사랑의 날"을 맞아 평소보다 좀 일찍 퇴근을 해서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진교면 고외마을 경로당을 찾았습니다.


이 마을은 경로당을 공동주거시설로 만들어

현재 여섯 분의 할머니들이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이 시책에 관심을 가진지라

할머니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계시는지 참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왔어!"

"할머니들 잘 사시는지 보고 싶어서 구경 왔어요"

"잘 왔어 어영 들어와"


어두운 방에 불을 밝혀주시면서 대 환영을 해 주셨습니다.


방에는 각종 운동기구, 노래방 장비, 주방, 샤워실이 잘 갖춰져 있었고

방은 할머니들이 쓸고 닦아 윤이 반질반질하게 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모여 사시니까 뭐가 가장 좋으세요?"

"칭구지 칭구, 심심하지 않아!"


"밥은 누가하고 청소는 누가해요?

"정해 놓지 않았어. 되는 대로 해"


"그럼 가장 젊은 할머니가 많이 하시겠네요?

"그렇지도 않아. 오히려 나~ 많은 이가 더 많이 해"



"밥 먹었어?"

"아직요, 집에 가서 먹어도 되요"


"라면 끓여 줄까?"

"그러실래요? 끓여주세요"


두 번째 고참할머니가 라면을 끓여주셨습니다.

눈 깜짝할 새 먹어 치워버리고 나니


‘커피 한잔 타 줄까?’

‘커피도 있어요?’


‘없는 게 없어’

‘그럼 타 주세요’


일명 경로당 커피가 아니겠습니까?


"심심할 땐 뭐하세요?"

"저기 있잖아, 저거! 한판 할겨?"


"예 한판 해요 할머니, 이것은 그냥하면 안되고 돈 따먹기 해야하는데"



"여기는 돈 따먹기 하는 사람 한 사람도 없어‘

‘신고 할려고 하는거 아니재?"


"신고는요 할머니‘

‘10원짜리라도 돈 따먹기를 해야 눈이 벌개서 재밋게 할 수 있어요"


"여기 사는 할매들은 절대로 돈 따 먹기는 안 해"


‘요 할망구, 이 패가 뭐시고? 좀 잘 안주고’


패를 받아 든 고참 할머니의 애교섞인 투정입니다.


할머니들과 대여섯 판의 화투가 돌았습니다.

일명 민홧투, 사실 돈 따먹기를 안하니 재미는 덜하더군요.


"한판 더해요 할머니"

"우리야 더 놀아주면 고맙지"


"할머니 노래한곡 해 보세요"

"노래 할줄 몰라. 부녀회장이 와서 켜 줘야 돼"

"제가 켜 드릴게요"


한참 만에 전원을 찾아 겨 놓으니 할머니들이 부끄러워서 그런지

제 앞에서는 결코 노래를 하지 않을려고 하더군요.


저는 할머니들의 환송을 받으며 또 뵙기를 기약하고 돌아왔습니다.

올해 안으로 10개를 더 오픈할 예정입니다.


서로에게 말할 수 없는 고독을

노인들 스스로가 풀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노인공동주거제,

지금까지 발명된 최고의 고독해독제가 아니겠습니까?




저에게는 1974년도에 발간된 ‘고독의 반추’라는 낡은 수필집이 있습니다.


수필가 윤오영선생의 글인데

오래전에 읽은 글인데도 너무 기억이 생생하여 이참에 다시 찾아 인용해 봅니다.



나는 원래 고독을 사랑했다 ....... (중략)

그래서 나는 신선이 부러웠다.


그것을 구할 수 없는 일인 것을 아는 까닭에

단 하루만이라도 사람 없는 깊은 산 속이 그리웠다.


이것이 나로 하여금 어느 날 정처 없이 깊은 산 속으로 헤매게 했던 것이다.

다행히 나무꾼의 발자취 하나 없는 곳을 찾았다.


아마 천기가 생긴 후 이곳만은 한 번도 인간의 발자취가 와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세상이 이런 곳이 있으리라고는 일찍이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높은 바위가 있었다.


가진 애를 쓰며 그 바위 위에 올라가 우거진 나무 사이로 하늘이 끝없이 푸를 뿐,

인간 세계와는 격리된 먼 뫼 뿌리에 떠가는 구름이 솜 같이 피어날 뿐,

그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 (중략)



바위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와락 반가웠다.

손이 먼저 집었다.

그것은 누가 피다 떨군 담배꽁초 하나.


왜 집어 들었는지 왜 반가웠는지 모른다.


아! 나와 같이 고독이 그리워 이 자리를 찾아 와 앉았다 간 사람이 또 하나 있었구나!


그 사람이 누구일까?

불현듯 만나보고 싶다, 눈에 눈물이 도는 것을 느꼈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사람을 그리워하고 고독에 몸부림치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사람을 그토록 싫어한 것은 진실로 사람이 그리웠던 탓 이었구나!... (후략)




때로는 고독을 즐긴다고들 말하지만

진정 제대로 된 고독을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봅니다.


농촌 노인들의 석양에 진 고독

언젠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느껴야 할 고독이 아닐런지요?


새로운 한 주, 고독을 넘어 행복한 나날 되세요.




<하동에서 조문환 드림> 

 

 

태그  모내기, 하동, 흥룡마을, 앵두나무, 고외마을노인고독문제, 독거노인, 경로당, 노인공동주거제, 고독의반추, 조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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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공주   2011-05-31 23:26 수정삭제답글  신고
늙으면 외롭고 촌스럽고 무릎시리고... 등따숩게 지내고 친구랑 얘기하며 사시게해 드려야할텐데..
Harrison   2011-05-23 12:33 수정삭제답글  신고
I love lips as red as a cherry.(앵두같은 입술)
It"s barley harvest season. (보리타작)
Young peole should respect elderly people. (老人恭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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