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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에서 온 편지 (27)
더페스티벌    2011-07-24 죄회수 3,421 추천수 2 덧글수 3  인쇄       스크랩     신고

 

(아빠, 다녀올게요!!!!! 대서인 지난 토요일 화개천에서 모녀가 시원한 한 나절을 보내고 있네요)


대서, 중복.. 이는 듣기만 하여도 열이나는 말이다.

하지만 금년 대서와 중복은 크게 양보하는 듯 합니다.

이정도면 굳이 여름이라고 하지 않아도 될 법 하네요.


그렇지만 이제 여름이 막 시작한 걸요.

피서지를 대표할 화개천과 청암골에는 벌써 피서객들로 북적이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피서지로 딱 안성맞춤인 하동소개와,

입맛을 돋우는 은어..

그리고 무릉도원과 같은 천하제일 불일폭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다리밑의 평화입니다. 뭐니뭐니 해도 여름철에는 물이 흐르는 다리 밑이 최고 아니겠습니까?)



계곡형인가? 해변형인가?


드디어, 그동안 꾹 참았던 방랑기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피서철이 되었습니다.

피서계획은 잘 세우셨는지요?

하동에 살면 피서 갈 필요가 없겠네요.

이곳이 바로 피서지인데요.

맞잖아요?

그러면 제주도 사람들은 모두 제주도에 있겠네!

제주도가 피서지 이니까?

또 하와이 사람들은 하와이에 가만 있겠네!

하와이는 세계적인 휴양지이니까?


어떤 분이 저에게 건 말에 팍 쏘아붙인 말입니다.


하지만 그 분 말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동은 최고의 피서지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사람인 이상 누구나 새로운 곳을 찾고 싶은 본능이 있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이맘때가 되면 예전엔

라디오에서는 흐느적거리는 하와이안 음악이 흘러나왔고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해변으로 가요~’

‘물위에 떠 있는 해변의 종이배... 해변의 여인아’

‘바~닷가에 모래알처럼 수많은 사람들 중에 만난 그 사람’


바다로 유혹하는 노래들이 주류를 이루었었습니다.


휴가철이 되면 바다로 갈까? 산으로 갈까?

두 가지를 놓고 고민 많이 하시죠?


대부분 피서철이 되면 바다로 가자는 노래로 사람들을 꼬십니다.

바다는 다소 방랑기를 재촉하고 그동안 억눌렸던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는 곳이기 때문 아닐까요?


당신은 바다선호형 인간인가? 계곡선호형 인간인가?


바다 선호형이라면,

당신은 그동안 억눌렸던 삶을 살았다.

본능적 욕구 해소를 필요로 하고 있다.


계곡선호형이라면, 

당신은 몸매가 좋지 않거나 이로 인해 상처를 입은 기억이 있고

또 다소 심리적,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다....


어느 피서전문 정신분석학자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ㅋㅋ

진단이 있으면 처방이 뒤 따르는 것은 당연하죠?


이 모두를 치유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방랑기를 잠재울 수 있고,

심리적 불안정을 치유할 수 있는 곳


산과 계곡

바다와 강을 모두 가진 곳

하동으로 피서 오세용~~~~~ 

(섬진강에 나타난 마스크맨, 날엽한 손 놀림 보세요. 뭔가 한 건 한 거 같지 않으세요?)


은어(銀魚)에서 우주를 발견하다!


장맛비가 그치고 광란의 물길이 제 모습을 찾을 무렵이 되면

섬진강 남도대교 아래에는 은어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들의 모습이

하나 둘 씩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섬진강 은어는 전라도와 겡상도?는 물론

멀리 강원도, 서울 등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이것뿐 아닙니다.


이미 물 건너 일본에서까지 섬진강 은어의 명성을 듣고

‘차 때기’로 와서 한달이고 두 달이고 화개장터 근방에 방을 얻어놓고

은어낚시를 즐기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아마 섬진강 은어의 진면목을 이해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은어는 보리가 패기 시작할 무렵부터 맛이 들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이 때 은어에서는 마치 수박향이 나 다소 앳되지만 향긋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어가 진짜 맛있는 시기는 바로 7월 중순이 아닌가 합니다.

뼈에 힘이 생기고 육질도 쫀득쫀득하여 고소하고 씹는 느낌까지 일품입니다.

 

뜨거운 태양이 “쨍”한 주말, 남도대교 아래 강태공들 사이를 숨죽이며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자칫 소리를 내가가는 신경질적인 은어잡이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되는 날이면

모든 것이 허사로 끝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행히도 강 건너 전라남도 구례군 간전면에서 왔다는 유근석씨는

저에게 은어 잡이의 묘미와 은어의 생리적 일생까지 다 알려주었습니다.


해마다 은어 잡이가 허락되는 4월 16일부터 8월 30일까지 거의 이곳에 살다시피 한다는 유씨는

이미 은어낚시 중독증이 심각해 보였습니다.


다리 하나 건넜지만 유씨에게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묻어 나왔습니다.


요새는 “씨은어 놀림낚시”라는 방식으로 주로 은어를 낚는다고 합니다.


일명 “도모쓰리”, 즉 친구를 낚는다는 일본식 용어인데,

은어 한 마리를 생포하여 콧등에 낚시 바늘을 꿰고 그 은어의 꽁무니에 또 다른 낚시 바늘을 뀁니다.


이 은어를 씨은어라고 하는데 은어의 생리적 특성을 이용한 은어잡이 방법입니다.


은어는 이끼가 많은 바위를 중심으로 자기영역을 정하고

다른 물고기가 침입하면 그 영역을 지키고자 하는 전투력이 발휘됩니다.


자기영역 보존 본능에 따라 영역을 침범한 씨은어를 쫒아 내기 위해 꽁무니를 뒤 쫒다가

씨은어 꽁무니에 매달아 놓은 낚시 바늘에 걸려들게 되는 것이지요.


“친구를 꼬셔서 친구를 잡는다!”

은어의 세계에서야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새로잡힌 은어가 그 다음 씨은어가 된다는 것입니다.

나도 잡혔으니 나도 다른 놈을 잡는다?

은어를 보면 작은 우주를 보는 것 같습니다.

4월이 되면 바다에서 겨울을 보낸 은어가 고향을 향한 멀고도 험한 항해를 시작합니다.


은어는 초기에 동식물을 잡아먹는 잡식성으로 살다가

성장해 가면서 물속의 이끼류를 섭취하는 형태로 바뀌어 갑니다.


그래서 영양이 풍부한 이끼를 찾아 상류로 끝없는 행진을 하는 것이지요.

동료들과 경쟁적으로 이끼 선점을 위한 치열한 다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낙동강에서 출발한 은어가 저 멀리 강원도 태백까지 올라간다고 하니

은어의 힘찬 발길과 생존의지에 감탄할 뿐입니다.


그러나 8월말이 되면 수온이 급감하고 생식의 본능을 되찾게 됩니다.

전투력이 꺾이고, 모성 본능으로 산란을 위해 상류로만 향하던 머리를

드디어 하류로 돌려야만 하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는 것이지요.


9월 중순 바다가 가까운 하류에서 산란을 마친 은어는

기러기 소리와 파도소리를 들으며 그 파란만장했던 긴 여정을 마치고

쓸쓸히 새들의 먹이로 산화하게 됩니다.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간다!


출생과 성장, 치열한 삶의 경쟁 그리고 모성의 본능과 자기희생,

그 속에서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느낍니다.


그러고 보니 섬진강이 진짜 강의 모습으로 그 위용을 드러내는 지점은

섬진강이 화개천과 만나는 화개장터 바로 밑, 남도대교 부근입니다.


오백리 먼 길을 쉼 없이 달려온 섬진강은

이곳에서 동행을 만나고 한 숨을 돌릴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은어를 만날 수 있고

그 은어속에서 작은 우주를 발견할 수 있는 곳,


이번 휴가철에는 화개장터 아래 남도대교 그늘 밑에서 멱도 감고,

번뜩이는 은어와 우주를 논해 보심도 좋을 듯 합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불일폭포입니다. 저 곳을 들어서면 바로 진짜 무릉도원입니다)


불일폭포, 이 문을 통과해야 무릉도원에 들 수 있다.


불일폭포를 생각만 해도 늘 심장이 뜁니다.

하물며 불일폭포를 들 때에야 오죽하겠습니까?


“불일폭포를 가야겠다” 마음먹자 사백밀리의 폭우가 심술을 부려

다음기회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좋은 사람은 아끼고,

좋은 물건은 숨겨두듯이

저에게 있어서도 불일폭포는 아껴둔 일종의 愛地였습니다.


지난 토요일, 장마 언저리에 기회를 틈타 새벽녘에 불일폭포를 향했습니다.

읍내에서 출발 할 때에 모처럼 빛나던 파란하늘이

불일폭포의 출발점인 쌍계사에 도착하니 먹구름이 되어 몰려왔습니다.


아, 이걸 어떡해? 결국은 오늘도 불일폭포를 포기해야 하는가?

파란 하늘만 믿고 비옷도, 우산도 아무런 방패막이 없이 출발했는데...


쌍계사 경내를 서성거리다 아내가 비닐 두 조각을 마련했습니다.

지름이 채 두자도 되지 못하는 비닐에 의지한 채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여차하다가는 우레 (雨雷)에 두들겨 맞고 낙향 할 수 있다는 각오도 다졌습니다.


그러나 하늘이 도왔는지, 愛地에 대한 하늘도 감동했는지,

오부능선에 들자, 하늘로부터 강한 광선이 내리쬐기 시작했습니다.


어둑어둑한 숲 속에 갑자기 내리쬐는 광선은 차라리 우레보다 더한 진동이었습니다.


순간, 빗물에 못 이겨 축 쳐진 널따란 잎사귀에 투과되는 광선,

잎이 살아나고 숲이 춤추는 듯 보였습니다.


태양이 바람과 싸워 이겼다는 동화가 생각났습니다.

태양이 이겼다!


등산로에 늘어선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너도밤나무

그리고 하얀 꽃을 뿌려대는 노각나무는 온 몸에 일천 밀리의 폭우를 머금고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것도 잠시,

불일 길은 겨울이 생각보다 일찍 찾아옵니다.

모든 옷 벗어버리고 빼빼마련 단풍나무 가지를 뚫고 들어선 불일 길은

차라리 바티칸성당에서 만난 “피에타”였습니다.


녹음이 짙었을 때, 장마로 그 웅장함을 자랑했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가난하고 겸손한 몰골로 저를 맞이했습니다.


아! 이렇게 한 없이 겸손하고 낮아질 수 있는 거구나!


자연은 늘 나를 앞서서 길을 인도하는 교사며 스승입니다.

그 어느 대화보다 자연과의 대화만큼 나를 성숙시키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불일 길의 클라이막스는 불일평정에서 시작됩니다.

지난 해 봄, 산 벗 만개했을 때 불일평정은 고요하다 못해 차라리 무릉도원이었습니다.

그렇게 힘찼던 계곡물 흐르는 소리도 이곳 무릉도원에서는 숨을 죽여

고요하기 까지 합니다.


이곳에 오면 헐떡이며 올라왔던 숨을 고르고 한 바가지 들이키는 물에 온 몸이

새 힘을 얻게 됩니다.

한 바가지 물에 힘을 얻고 다시 불일폭포를 향해 발걸음을 떼자마자

그동안 숨죽였던 힘차고도 장엄한 계곡물 소리가 스테레오사운드로 들여오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울창한 녹음사이로 폭포의 머리부분이 보이자마자

60미터의 길이의 폭포가 그 장엄함을 노출시켰습니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급하게 내리꽂을 듯이 낭떨어지로 떨어지고,

중간 돌출부에 걸려 그 충격으로 대 폭발이 일어나 물줄기는 다시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 거센 부디침에서 산산조각난 물방울이 가는 포말로 다시 일어나 폭포를 뒤덮고

계곡을 신비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것도 순간, 신속히 재 결집된 물줄기는

다이빙 선수처럼 절묘한 동작으로 옥색호수로 내리 꽂힙니다.


순간적으로, 그러나 연속하여 일어나는 이 거대한 물줄기의 낙하와 충돌,

그리고 옥색호수로 입수하는 과정은

마치 정교하게 연출된 영웅들의 개선식을 연상시켰습니다.


불일폭포는 라르고에서 시작됩니다.


삼신봉에서 그리고 토끼봉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넓은 평원을 따라 흐르기를 며칠,

협곡과 계곡을 거치면서 왈츠와 쏘나타 음률을 타고

느리고 완만하게 모여듭니다.


이것이 점점 폭포와 가까워지면서 아다지오로, 모데라토로,

드디어 마지막 점프 순간에는 온 숨을 다 몰아쉬어 급하고 바람같이 알레그로로,


마지막 포르테시시모에다 프레스트로 빠르고 성급하게 절벽을 향해 도움닿기를 합니다.


한동안 무중력 상태를 느끼다 돌출부에 부딪혀 알레그레토로 진정을 시키고 드디어 입수,


푸!!!!!!!!!! 


그 길고 큰 숨을 다시 들이쉬면서 땅위로 올라와

아템포 - 본디빠르기로, 그리고 왈츠와 쏘나타로 ......

자연이 만들어 준 빠르기표와 셈여림표에 따라 그 일생을 계속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계곡과 계곡이 맞대어 좁디좁은 하늘사이로 검푸른 하늘이 드러나고

그 주변을 진초록이 감싸고 있었습니다.


불일폭포를 보고 돌아 온지 벌써 일주일,

아직도 저의 뇌리에는 천둥소리와 번쩍이는 번개 빛을 본 듯

정신이 쟁쟁합니다.


그리고 그 에너지로 한동안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불일폭포를 들고난 후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이 무릉도원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으니까요...


오늘도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계실 여러분들을 생각해 봅니다.

부디, 삶에 지치고 힘드시거든 불일폭포로 드시옵소서!


우레 소리를 들으시고, 노각나무 꽃 즈려 밟아 보시며,

지저기는 새 소리와 바람소리에 온 몸 씻으시고,

무릉도원으로 드시옵소서!

(하동에서 조문환 드림) 

태그  하동 조문환, 섬진강, 화개천, 청암골, 불일폭포, 은어, 화개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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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껍데기   2011-08-02 16:07 수정삭제답글  신고
불일폭포가 무릉도원이네요. 새소리 바람소리 우레소리 노각나무꽃내음~~
Harrison   2011-07-27 01:24 수정삭제답글  신고
느림의 미학 하동 슬로시티는 Largo로 시작되는 물길이 Presto로 가다가 A tempo로 돌아가서 결국 섬진강에서 페르마타..
John Hwang   2011-07-25 23:37 수정삭제답글  신고
다리밑 그리고 폭포,, 이 여름의 매력덩어리.. 담주에 화개천으로 가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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