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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에서 온 편지 (33)
더페스티벌    2011-09-04 죄회수 3,310 추천수 1 덧글수 2  인쇄       스크랩     신고

 

(우리 어머이, 오데 가시는교? 한낮에 작은 손수레를 끌고 가시는 어머니! 힘내세요!)

드디어 9월입니다!

격이 다른 칼라, 격이 다른 바람, 격이 다른 하늘....

사람들조차 격이 달라 보입니다.


오늘은 온 종일 하늘에 구름이 낮게 내려앉았습니다.

그러나 그 구름조차 한 폭의 회화입니다.


구월은 역시 격이 달랐습니다.


추석이 내~일~모~레입니다.


이번 주에는 남해안의 숨겨둔 비경 금오산과

추석을 앞둔 시골장터 대목장을 소개 해 드리고자 합니다.

(“같이 구경하입시더!” 금오산정상을 지키는 국군아저씨 근무 중 이상무!)





나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지 말라!

남해안의 초특급 전망대 금오산 (金熬山)


산은 일종의 마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번 가면 계속 끌리니 말입니다.


금오산은 산이지만 사실 바다입니다.

그 어느 곳 보다 바다를 잘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금오산은 바다가 있을 때 금오산이기 때문입니다.


오목조목하게 솟은 봉우리를 발아래 두고 있으면 구름을 탄 느낌입니다.



저녁노을이 질 무렵이면 만선의 전어잡이 배가 긴 꼬리를 남긴 채

술상항으로 무리를 지어 들어오고,


간간히 나무로 부엌에 불을 지피는지 굴뚝에 연기가 솟아오르는 모습에

한껏 정겨움이 묻어나는 중평항도 사람의 심성을 자극합니다.



좀 더 눈을 들어보면 흩뿌려놓은 듯한 작은 섬들,

누군가가 철저하게 그리고 정교하게 그려놓은 하나의 걸작이며

판타지와도 같습니다.


아직 환상에 사로잡혀 있을 즈음, 고개를 북쪽으로 돌리면

민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이 손에 잡힐 듯 눈앞에 서 있고,


남쪽으로는 비단을 덮어 놓은 듯한 금산이 그 고운 옷자락을 날리는 듯 합니다.



바로 발밑에는 아직도 이순신장군의 호국의 얼과 하늘을 찌를 듯한

호령소리가 진동하는 노량해,

그 위로 남해대교의 위용이 늠름합니다.



통영에서 여수까지 한반도 남해안의 3분의 1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고

저 멀리 데미샘에서 발원한 서정1번지 섬진강의 잘록한 허리도

적나라하게 바라볼 수 있는 금오산은 남해안의 초특급 전망대입니다.



일명 소오산이라고도 하는 이 금오산은

그 높이는 불과 849미터 정도에 머무르지만


아 ! 그 당당함! 그 위용! 그리고 그 절제성!

 (금오산이 금오산이 된 것은 바로 이 뿌려놓은 섬들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산을 처음 올랐던 때는 초등학교 6학년,

옥종초등학교에서 군내 어린이 축구대회를 마치고 군용차량을 타고 올랐던 때였습니다.


이날 일찌감치 탈락한 우리는 선생님이

군부대에 부탁해 군용차량을 타고 이 산을 올랐습니다.


군사작전도로를 30분여 덜덜거리며 올라가니 산 그림자가 이미 동네를 덮었고

검붉은 노을이 바다를 집어삼켜 노량 앞 바다는 이미 이글이글 끓고 있었습니다.


아직 감성이고 뭐고 있을 리 만무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생소한 비경에

그날 탈락한 충격은 저만치 사라져 버린 듯 했습니다.


난생처음 타 본 군용트럭, 그리고 한 눈에 내려다 본 남해안의 비경,

비록 옆구리 갈비뼈가 얼얼거릴 정도로 심각한 요동속에서 오른 산이었지만

아직도 그 환타지는 지워지지 않은 채 각인되어 있습니다.



금오산 일출은 일종의 명품입니다.

그 어디나 일출은 황홀하지 않는 곳이 없지만 금오산 일출이 명품인 것은

흩뿌려 놓은 섬들을 태우는 듯한 강열함입니다.



붉게 타는 듯한 열정속에서의 작은 섬들,

이글거리다 일렁이다, 나중에는 요동을 치는 듯

차라리 섬이 아니라 불 속에서 뛰노는 아이들과도 같다!



금오산에서 바라본 일몰은 일출에 못지않습니다.


백운산에 태양이 걸리면 섬진강은 오랜지에서 진한 석류색으로 변하고

기나긴 산 그림자가 휘감아 도는 섬진강의 잘록한 허리들은

미술시간에 배운 마아블링 기법처럼 수묵화와도 같이 변신을 거듭합니다.



언젠가 지리산 마지막 봉우리 형제봉에서 섬진강을 바라보았을 때에는

코끝이 찡하고 그 처절한 역정에 진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저 가느다란 몸매로 오백리 길을 쉼 없이 달려왔다!



금오산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바라본 섬진강은

그 풍만함과 여유로움에 장중하고 위용넘치는 오케스트라 연주와

비교될 것 같았습니다.



금오산에 오르면 이순신장군이 생각납니다.

노량해전, 장열하게 최후를 맞이하셨던 곳입니다.


바로 그 노량앞바다를 내려보고 있는 금오산,

금오산은 분명 이순신장군의 최후도 지켜봤을 것입니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금오산도 그 말을 배운 듯,

내가 남해안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지 말라!


남해안의 숨어 있는 초특급전망대,

그 존재가치에 비해 그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마치 이순신장군을 본받은 것 같습니다.


그 이름 석자를 알리기보다는

있는 그 자태, 그 위용만으로 이미 세상의 명산이 부럽지 않습니다.



올 가을에도 노을에 비친 채 바람에 춤추는 금오산 갈대를 보고 싶습니다.

원색에 가까운 황금들녘과 그리고 여기에 대비되는 검푸른 남해바다도

보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그냥 뿌린 듯 그러나 철저히 계획된

흩뿌려 놓은 섬들의 군무도 보고 싶습니다.


올 가을엔 금오산에 오셔서

"저 섬은 나의 섬", 멋진 섬 하나 장만하시기 바랍니다.



 

(새벽같이 시장골목을 지키시는 어머이! 오늘 돈 마이 벌어 가이소!)



추석은 어디에서 시작되나? 시장에서? 노!

엄마들의 가슴속에서!




추석이 가까워 졌습니다.

감도 익어갑니다.

밤도 익어갑니다.



저의 국민학교 2학년 2학기 국어책에 나온 글입니다.

그 땐 글자 자체를 아는 것 보다는 전체 문장을 외웠던 기억입니다.


여름방학을 마치고 등교하는 날

새 교과서를 받았을 때 그 감동!

달력으로 책표지를 입히고

이름 석자를 큼지막하게 써 넣을 땐, 꿈이 저 만큼 부풀어 있었습니다.


먹을 것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지만

그 때의 추석은 참 풍성했었습니다.

떡 한조각도, 부침개 한 접시도 이웃과 나눴던 추억이 있습니다.


이미 시골에는 추석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읍내시장은 여느 시장과는 다른 모습으로 들떠 있어보였습니다.


읍내 주변마을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난전 시장에 이미 진을 치고 앉아

손님맞을 채비를 하고

트럭 한대가 나타나자 아줌마 부대가 몰려들더니

순간 왁자지껄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알고 보니 고추며 토란대 말린 것을 한 분이 가져왔는데

이를 중간상인들이 서로 가로채기 위해서 일어난 ‘싸움’이었습니다.



시장만큼 세상을 잘 말해주는 곳은 없는 듯 합니다.

시장만큼 사진빨 잘 받는 곳도 없는 듯 합니다.


선거철만 되면 넥타이 매고 선량들이 약방의 감초처럼 나타나는 곳도 시장입니다.



이제 막 채소밭에서 가져와 살아서 날아갈 듯한 채소들,

어머니들의 땀과 숨결이 그 속에서 호흡하는 듯 하였습니다.

어제 하루종일 오늘 새벽시장을 위해서 옷에 땀을 흠뻑 적시셨을 것입니다.



애호박, 가지, 파, 토란대, 호박줄기, 풋고추, 콩나물 그리고 도라지...

한 가지만 대량생산 하는 것이 아니라

채소밭에서 이것저것 애지중지 가꾸셔서

그것도 돈 되는 것은 모조리 시장에 가져 나오셨습니다.


그래도 시장에 가져나올 ‘물건’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다듬고 씻고, 말리고, 묶고...



할매, 이 호박 얼맨대예?

다 해서 오천원


할머니는 어디서 오셨는데예?


고동골, 그런데 밥은 묵고 나왔오?

아직예!


수고가 참 많소!


시장에는 어떻게 나오셨는데 예!

우리 아들이 차로 태워주고 갔오!



새벽에 나오느라 채 지갑을 챙기지 못해

할머니의 물건을 하나도 사 드리지 못해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척 무거웠습니다.


다 사주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제가 고등학교 때 쯤으로 기억납니다.

지금 때처럼 채 가을이 다 되기 전에 엄마는 옥수수로 삶아서 시장에 파시곤 하셨습니다.


10리 거리를 걸어서 가시거나 때로는 완행버스를 타고 가셨습니다.

그 날은 제가 집에 있어서 오토바이로 엄마를 태워 시장에 나갔습니다.


시장보러 가는 것이라면 다르겠지만

옥수수 팔러가는 엄마를 태워가는 것은 실로 부끄러운 일로 여겨졌습니다.


이것을 아신 엄마는 제게

다 팔 때 까지 저 만치 가 있거라!



저는 사람들이 모르도록 멀리서 옥수수 파시는 엄마는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걸 누가 사 먹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다행히 두어 시간 만에 가져간 옥수수가 ‘매진’되었고

그날 저녁상에는 싱싱한 갈치조림이 올라왔었습니다.



지금생각하면 엄마가 시장에서 장사를 한 것이 부끄러웠던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여름이면 뙤약볕에서 토란대 말리고 시장에 내다팔아 학비 마련해 주셨는데

그것을 부끄러움으로 생각했으니....


자식들이란 다 그런가 봅니다.


아닌가요? 저만 그렇나요?



이날 아침 새벽시장에 나오신 우리 어머니들,


추석에 손자 용돈 주시고,

비린내 나는 생선을 자식들 입에 넣어 주시고 싶어서

흔하디흔한 양말이지만 자식들 신켜 주시고 싶은 일념 하나로

어둠을 뚫고 나오셨을 것입니다.


마치 저의 엄마 처럼요....



3일과 8일은 하동의 동쪽에 자리잡은 진교장날입니다.


진교장은 비록 읍내장보다는 그 규모면에서는 작지만

진짜 시골시장 다움을 지키고 있는 곳입니다.


자!아~ 전어 한 무더기에 오천원, 오천원 싸다 싸!

여기저기서 손님을 호객하는 소리


오백 원 만 빼줘, 안돼 그러면 한 푼도 안남아!

물건 값 단돈 오백 원 깎기 위해 흥정하는 소리


저 멀리 공터에 시골장터의 상징인 ‘뻥티기 튀기는 소리’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국수시켜 드시면서 ‘후루룩’ 하는 소리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 길 ~~~ 짠짜라~~~

무허가 오디오 판매차량에서 울려퍼지는 구수한 트로트 가락에...

시장이 시장다워 보였습니다.


재래시장 쇠퇴 문제로 어깨펴고 시장 다니기가 힘들었던

한 사람의 공무원으로서

모처럼 떳떳하고 편안하게 시장을 활보할 수 있었습니다.


콩나물, 호박줄기, 시금치....

시장바구니가 꽉 찰 정도로 시장을 봐도 4만원에 모든 것을 해결 할 수 있었습니다.



추석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시장과 그리고 엄마들의 가슴은 이미 추석으로 분주해지고 있습니다.


준비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추석은 예나지금이나 가슴 설레는 날입니다.

이번 추석에는 고향에 오시거든 부모님께 용돈 마이 드리고 가시이소!



<하동에서 조문환 드림>

 

태그  하동 조문환, 시골장터, 재래시장, 섬진강. 갈대밭, 금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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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ugger   2011-09-15 10:25 수정삭제답글  신고
엄마들의 가슴 속에서 시작된다는 추석인데.. 올핸 과일 값이 너무 올라서~ 차례상 차리는 게 만만치 않아서~ 엄마들의 가슴에 멍이 들었답니다.
LaMer   2011-09-06 01:02 수정삭제답글  신고
오백원만빼줘~ 안돼 그럼한푼도 안남아~ 얼마나 정이가는 흥정의 소리입니까? 시골장터가 살아났음 조켔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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