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이상은 지금도 외운다.
"태정태세 문단세,예성연중 인명선,광인효현 숙경영,정순헌철 고순"이라.
조선조 역대 임금의 시호 첫자 모음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업적과 실책도 안다.
조선왕조 이전의 고려 및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건국과 부흥,패망 과정까지 어렴풋이나마 기억한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요동 정벌과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을 알고,백제의 찬란한 문화가 일본에 전해졌음도 알고,신라 태종 무열왕 김춘추가 어떻게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는지 안다.
고려 태조 왕건의 지혜와 조선 태조 이성계의 결단,세종과 정조의 학문에 대한 열정 또한 잊지 못한다.
승리와 영예의 역사만 떠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원을 호령하던 고구려가 왜 나당연합군에 패했는지,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견디고 문화 중흥의 시기를 이룩했던 조선 왕조가 무슨 일로 쇠퇴했는지도 서술 가능하다.
조선어학회 사건이 왜 생겼는지,놋그릇 공출이 뭔지를 기억함으로써 나라 잃은 국민의 설움을 제것인양 느낀다.
억지로든 자의로든 열심히 했던 국사 공부 덕이다.
요즘엔? 컬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1492년은 알아도 조선왕조가 건국된 1392년은 모르는 젊은층이 허다하다.
대학생의 역사에 관한 상식 점수가 평균 38점(100점 만점)이었다는 보고도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사 교육을 등한시해온 까닭이다.
중학교의 경우 사회과목에 포함돼 1주일에 겨우 1∼2시간 들어있고 고등학교에선 선택과목이 돼 빠져있기 일쑤다.
11개 사회과목 중 국사의 선택순위는 7번째.
게다가 7.9급 공무원 시험 외엔 어디서도 국사 지식을 요구하지 않으니 대학에서도 배울 턱이 없다.
중ㆍ일의 역사왜곡에 맞서 교육부가 국사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역사학자 부르크하르트는 역사란 "한 시대가 과거에서 찾는 주목할 만한 사실에 관한 기록"이라고 말했다.
역사를 연구하면 "변하지 않는 것, 되풀이되는 것, 유형적인 것을 알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제부터라도 국사를 가르쳐야 하는 이유다.
*곽봉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