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마지막 주말밤을 강릉에서 ..
강릉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것.
강릉에 새로운 커피바람이 불고 있다.
커피마니아들이 대거 찾아 온다.
커피의 메카가 된 강릉, 별다방 콩다방 없이도 로스터리 커피숍이 즐비하다.
강릉커피축제는 지난 2007년 11월 9일자 중앙일보 김한별기자가 주말 위클리판으로 특별르포기사화한 「커피가 강릉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기사를 보고 브레인스토밍(brain storming)한 결과물이다. 2009년 10월. 「10월의 마지막 밤을 강릉커피축제와 함께」라는 슬로건으로 그해 가을 커피축제는 강릉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하게 된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신라시대의 차문화유적지가 강릉에 있다. 남항진쪽에 군부대에 있는 「한송정」이라는 정자는 신라시대의 문화유산이다. 이곳에서 신라의 화랑들이 차를 달여마신 다구(茶具)가 유적으로 남아있다. 또한 경포대를 비롯한 곳곳에서 차를 달여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주로 ‘커피 1세대’라는 표현으로 불려지시는 박이추 선생님. 커피라곤 ‘인스턴트 다방 커피’뿐이던 시절, 자가(自家) 로스팅 문화를 퍼뜨린 ‘3박(朴) 1서(徐)’ 중의 한 분이다. 특히 원두를 강하게 볶아 진한 맛을 내는 일본식 커피의 대가다. 1988년 서울 대학로에 커피 하우스 ‘보헤미안’을 연 것을 시작으로 수십년의 세월을 ‘커피 인생’으로 사셨다.
개업 4년 만에 서울의 안암동 고대 후문으로 가게를 옮겼고, 2000년엔 아예 서울을 떠나 강원도 오대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1년 뒤엔 경포대, 다시 그 3년 뒤엔 강릉 연곡면 현재 자리로 옮겨왔다. 가게는 명성에 비해 그리 화려하지 않다. 산골의 펜션 느낌이다. 커피는 도시인들의 기호품이건만 그는 도시를 버리고 사람을 피하고 화려함을 멀리한다. 이유가 뭘까? “바다의 포용력이 좋아서”란다. 또 선문답이다.
그분께서 언론에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에스프레소가 낫다, 핸드 드립이 낫다, 말들 많지만 중요한 건 유행이 아니라 10년, 20년 뒤에도 마실 수 있는 커피를 만드는 거죠.” 즉 긴 호흡으로 살아야 한다는 명쾌한 삶의 진리같은 말씀을 자연스레 전하신다.
차(茶)를 덖으며 도를 닦는 고승처럼 묵묵히 커피의 세계관으로 걸어오신 선생님이 계시기에 강릉커피는 한걸음 더 빨리, 성숙한 길을 걷게 되었을 것이다. 강릉커피역사의 산증인이자 지금도 여전히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고 계신 명장이 계시기에 강릉커피는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