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장군의 지혜를 배우자
제48회 의령홍의장군축제
의령은 지리적으로 서북쪽은 산으로 막히고 동남쪽은 낙동강과 남강의 두 강이 형승을 이룬 물이 풍부하고 토지가 비옥한 곳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의령사람들의 습성에 대해 ‘습속이 굳세고 용맹함을 숭상한다’ 라고 하였다. 의령지역에서 의병이 일어나 괄목할 만한 전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도 지역의 지리적 특성과 지역민의 성향 등도 작용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임진년 의령지역의 의병활동은 곽재우의 창의 초기만 하더라도 주로 낙동강과 남강수계를 따라 의령지역을 자체 방어하는 일에 집중되었다.
최초의 곽재우의 창의에 가담한 사람은 심대승·권란·장문장·박필 등 10여명 이었으며, 이후 의령지역 의병의 활약으로 임진년 7월 무렵이 되면 삼가현의 군사까지 합류하게 된다. 바로 이 시점에서 곽재우와 그 휘하 17장의 군무가 분장된다. 대장 윤탁은 용연에 주둔하고, 선봉장 심대승은 장현, 기찰 심기일은 정호, 복병 안기종은 유곡, 수병장 이운장은 낙동강 서편, 돌격장 권란은 옥천대, 수병장 오운은 백암, 곽재우는 유곡 세간에서 전군을 통제하였다. 낙동강에서 남강의 정암에 이르기까지 60리 사이에는 정찰대가 총총히 배치되어 활동하였다.
의령의 의병부대는 지형, 지물과 뛰어난 전략으로 연전연승하였으며, 1594년 계사년에 경상우도가 곽재우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활동영역은 경상우도와 창녕·영산·현풍 등 일부 경상좌도까지 확대되었다. 의령지역의 의병활동은 전국의 의병봉기의 도화선이 되었으며 의령을 포함한 경상우도를 지켜냄으로써 일본군의 전라도 진격을 저지하고 후방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등 일본군의 전략에 막대한 차질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