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마임이스트 유진규 선생의 40년을 총 정리하는 『유진규의 진술공연』이 서울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개최된다. 삼일로 창고극장은 그가 처음 몸 담었던 극단 에저또가 1975년 개관한 극장으로 그가 춘천에 정착한 80년 대 초까지 그의 주요 작품들이 발표된 의미 있는 장소다
11월 19일부터 24일까지 춘천 몸짓극장에서 진행되는 마임인생 40년 『발가벗은 유진규』 에 이어 ‘유진규 페스티벌’의 두 번째 프로그램인 이 공연은 그의 40년 마임인생을 몸짓이 아닌 말로 담담히 풀어내는 첫 시도이다.
몸짓에서 해방된 마임
유진규 선생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마임이스트다. 하지만 지난 24년간 춘천마임축제 예술감독직을 병행하면서, 그의 예술적 성취가 가려졌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 공연은 축제기획자가 아닌 철저히 마임이스트 측면에서 유진규라는 아티스트를 조명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춘 페스티벌 형식으로 꾸며졌다. 춘천에서 벌어진 ‘마임인생 40년 『발가벗은 유진규』가 축제기획자라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고, 온전히 마임이스트 유진규를 돌아간다는 의미였다면, 이번 서울 공연은 그가 마임이나 몸짓이라는 제약해서 해방되어, 언어로 그의 작품인생을 쉽고 간결하게 관객들에게 들려준다는 데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기국서, 최석규, 오성화 등 마임 인생과 함께한 동반자들 게스트 참여
공연은 그의 40년 마임 인생을 3부로 나누어 사흘 동안 진행된다. 12월 3일 월요일 오후 8시에는 「예술가의 길. 말없는 세계와 만나다」라는 부제로 그가 마임을 시작한 1972년부터 1986년까지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수의학과에 입학한 평범한 대학생이 자살을 생각하던 끝자락에서 연극을 만나고, 평범한 연극이 싫어 마임을 시작한 이야기. 판토마임을 버리고 한국적 마임을 시작하게 된 계기, 춘천에 정착해 소를 키우며 마임을 한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들려준다. 진행은 그와 함께 초기활동을 함께 한 연출가 기국서, 헌정공연은 고재경의 『머리카락』이 펼쳐진다.
12월 5일 수요일 오후 8시에는 「은퇴와 복귀. 손에 부채를 들다」라는 부제로 1987년부터 1997년까지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들려준다. 50여 명의 마임이스트를 규합해 한국마임협의회를 만든 과정, 1989년 마임에게는 대관해줄 수 없다는 공공극장의 냉대 속에서 대학로 소극장 공간사랑을 빌려 한국마임페스티벌을 시작한 이야기, 그리고 이를 시작으로 춘천으로 자리를 옮겨 춘천마임축제를 시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진행은 그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후배인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축제감독 오성화, 헌정공연은 이두성의 『밤의 기행』이다.
파란방, 노란방 등 차기작 계획 발표
공연의 마지막 날인 12월 7일 오후 8시에는 「빈손으로 돌아오다. 몸을 버리다」라는 부제로 1998년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진술한다. 뇌종양으로 모든 활동을 정리하고 죽음을 준비하던 이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대표작이 발표되고, 춘천마임축제가 국제적인 행사로 성장한 때이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그가 어떻게 대표작들을 만들었고, 춘천마임축제를 급성장시켰는지 들어볼 수 있다. 그리고 ‘마임이 꼭 몸으로 보여야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설치와 공연이 결합된 방 시리즈(하얀방, 빨간방, 까만방 공연/ 노란방, 파란방 예정)의 뒷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진행은 그와 함께 춘천마임축제를 키워낸 최석규 아시안나우 대표가, 헌정공연은 노영아의 『빛과 몸』 이 펼쳐진다.
공연을 준비하는 유진규 선생은 “말로 하는 연극이 싫어 마임의 길로 들어섰지만, 평생 단 한번쯤은 말로써 솔직하게 내 예술과 인생을 드러내고 소통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가의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40주년을 맞아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긴다. 나는 몸짓이 아닌 말로 솔직하게 내 발자취를 풀어낼 것이고, 관객들에게 모호한 느낌이 아닌 구체적인 팩트를 전달하려 노력할 것이다. 후배예술가, 예술가 지망생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마임이라는 낯선 예술을 공유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며 이번 공연을 준비하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