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버스를 타고 차창 밖을 보며 한글을 배우기 위해 지나가는 모든 간판들을 읽어나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시골길이라도 가다보면 전혀 한글을 접하지 못해서 아쉬워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그런 걱정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우리나라 어딜 가나 모든 건물들의 외벽이 간판으로 도배가 되어있음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니까요. 간판천국인 우리나라는 간판에 대한 규제보다 간판권장국가인 듯합니다.
후진국으로 갈수록 간판이 많다고 합니다. 선진국일수록 도시미관이나 거리디자인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세계 어딜 가나 2층까지만 외부간판이 허용되고 그 이상은 아무 글자나 그림이 보이지 않는 게 도시미관 정책의 관례입니다.
프랑스 파리를 가 볼까요? 우선 간판 시안을 가지고 시청 담당부서에 가서 검열을 받아야합니다. 상인들은 아무 불만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우리나라처럼 국민생활 불편함이나 공무원사고의 경직성 어쩌고 하면서 불평을 갖지 않습니다. 입간판이라도 세우려면 부담금을 꽤나 내야 한답니다. 병원이나 약국 등의 위급사안 외에는 어지간해서 입간판으로 잘난 척 할 수 없는 시스템입니다. 파리시내 대부분의 상가는 1층에만 간판이 내 걸리고 2층부터는 전혀 글씨가 안 보입니다. 현수막은 아예 눈 씻고 찾아 볼 수도 없습니다. 물론 지정장소에 공공목적의 행사 배너는 좀 있지요. 간판 내 거는 데 돈도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도시미관이 자연적으로 정착되어 간답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OECD에 가입했고 G20 정상회의도 개최하는 앞서가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왜 유독 우리 주변이 태국이나 베트남의 길거리보다도 더 간판의 시각적 오염이 심각할까요? 한국의 서울을 일본의 동경이나 중국의 상해에 비교해 봐도 한강의 아름다움과 화장실 청결도 등으로 꿀리지 않는데 말입니다. 외국인과 함께 길을 걷다 보면 창피할 때가 많습니다.
한국인 특유의 뽐내기 캐릭터가 이렇게 만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누구 보다 내가 더 눈에 띄어야 하고 경쟁에서 지지 않아야 함을 어려서부터 몸에 밴 것이지요. 이에 대해서는 오로지 강력한 규제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공공디자인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도시미관의 예술성을 외치는 지자체 단체장들이 늘어 나면서 최근에 많은 간판 재정비 작업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3층 이상 꼭대기까지 간판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외국인들과 함께 지역축제 참가를 위해 시골길을 드라이브하다보면 정말 저해된 시골풍경에 한숨만 나옵니다. 그 무슨 토종닭/ 사철탕/ 가구단지/ 부동산/ 땅/ 떼인 돈 받아드립니다/앗 타이어 신발보다싸다 등등 눈살을 찌뿌리게 할 정도로 간판과 현수막이 난립되어 있습니다.
요즘엔 구청도 앞장서서 현수막을 내 걸고 있습니다. 단속에 열을 올릴 때는 언제고, 구정홍보의 수단이 꼭 길거리 배너 밖에 없는 건지 생각해 볼 때입니다.
간판들의 축제는 이제 막을 내릴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이제는 홍보물이 아니라 사람이 축제를 벌여야 하지 않을까요?
글/사진: 칼럼니스트 / shane@thefestiva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