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같은 하늘 아래 누워라!
산은 강을 낳고 강은 사람을 키운다.
그래서 산과 강과 사람은 그 태생이 같다.
내가 걸어왔던 섬진강 오백리 길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은 강을 닮았고 강은 산을 닮았었다.
높은 산자락을 지나는 강은 용맹하고 위용이 넘쳤고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 또한 기백에 찼었다.
둥근 산과 물 흐르듯 부드럽고 유연한 산을 스쳐 지나가는 강은
그 소리조차 부드럽고 꿈결 같았다.
그랬으니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유순하고 느렸다.
그러니 산, 강, 사람은 서로서로 닮았다.
<마지막 여울>에서 진한 사랑의 속삭임을 밤새껏 나눈 강물과 여울은
이제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한다.
저 멀리 평사리가 보인다.
평사리는 생명의 땅이다.
굳이 소설 토지를 말하지 않더라도 평사리라는 세 글자 속에는
우리민족의 피맺힌 절규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느낌을 늘 가진다.
민초, 저항, 민중의 한(恨).... 그래서 평사리를 지나면 가슴이 떨린다.
요즘 평사리는 어슬렁족들의 천국이되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캠핑족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가리지 않고
평사리에 드러눕는다.
그래서 평사리는 느림의 아이콘이 되었다.
내가 보기에 마음의 속도를 늦출 수 있는 브레이크가 장착된 곳은 평사리 뿐이다.
봄에는 무딤이 들판 청보리 밭의 풀피리소리가,
여름에는 눈부시게 빛나는 은빛모래 속에 눈 껌뻑이는 재첩이,
가을에는 푸른 섬진강과 보색을 이룬 갈대의 속삭임이,
그리고 겨울에는 물속을 파닥 거리는 청둥오리가 느림의 장단을 쳐 준다.
평사리를 가운데 두고 우람한 봉우리가 이를 지키고 서 있다.
형제봉과 구재봉이다.
둘 다 지리산의 아들들이다.
구재봉은 백두대간의 마지막 점이다.
아니 시작점이자 출발점이라야 더 옳을 수 있다.
섬진강의 자양분을 받아 형제봉, 왕시루봉, 천왕봉, 소백산, 태백산,
그리고 금강산과 백두산으로 끝없이 실어 나르지 않았을까?
그랬기에 대한의 기상 백두대간은 이 땅을 등뼈처럼 지키고 섰으리라!
형제봉에 오르면 꼭 닮은 쌍둥이 봉우리가 바로 지척에 서 있다.
하나는 형제봉 하나는 성제봉이다.
형제(兄弟)의 경상도식 발음이기도 할 수 있고 성제(聖帝)일수도 있다.
두 봉우리가 불과 가랑이 벌리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기에
성제(聖帝) 보다는 형제라 더 믿고 싶다.
평사리 들판 사이에 두고 섬진강을 지키고 있는 구재봉과 형제봉은
섬진강의 그 인생여정을 고스란히 보아왔다.
섬진강을 보기위해 형제봉을 올랐다.
탯줄처럼 가느다란 허리를 가지고 여기까지 달려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찡해왔다.
폭우가 쏟아진 날 저녁, 구재봉에서 본 섬진강의 하늘은
석류가 익어 그 알이 터져나갈 듯이
짙은 구름을 찢어 젖히고 작렬하는 빛이 뿜어져 나왔었다.
그 빛이 바로 섬진강을 데우더니 결국은 섬진강이 용틀임 하는 듯
붉게 이글 그렸다.
섬진강이 용이 되어 승천이라도 할 듯하였다.
어둠 속에서 용이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참 후에 용은 하늘로 올라가 버리고 지척은 흑암이 되었다.
태양이 서쪽 무등산 너머로 귀향을 하고 순간 평사리는 고요와 정적이 흘렀다.
그러더니 어두워진 평사리 들판을 가운데 두고 악양골에는
별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하나 둘씩 켜지는 마을의 불빛이 꼭 하늘에서 쏟아진 별똥별이
땅에 흩뿌려진 듯하였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형제봉과 구재봉은 이불을 깔고 누울 시간이다.
오늘 하루도 평사리를 지켰고 섬진강을 보듬어 뉘었다.
나 평사리에 누우면 이렇게 노래하고 싶다.
사랑한다면 같은 하늘아래 누워라!
너의 숨소리 자장가 되고
나의 숨소리 봄바람 되어 너의 귀 간질이리
평사리 은빛모래 요 삼고
무딤이 청보리밭 이불삼아 가만 누우면
달나라 넘고 북두칠성 스쳐 지나가 은하수 세계에서 뛰놀리
하늘에서 쏟아지는 은하수 내 가슴속으로 파고들 때
형제봉과 성제봉 손 맞잡고 잠들리
나 아침이슬에 깨어나리
섬진강 은어 내 발 간질이고
행복에 겨운 잔물결의 몸 뒤척임에 나 눈 비비리
구재봉 너머 햇님 떠올라 눈부실 때
너의 손 맞잡고 평사리 백사장에서 춤추리
나 너를 사랑하기에 언제나 어디서나 같은 하늘아래 누우리!
<하동에서 조문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