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65번지 아리랑 명품점의 2층에 넓이 10평의 전시실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타악 연주자인 흑우(黑雨) 김대환(1933~2004)이 연습실로 쓰던 공간입니다. 흑우는 한 손의 손가락 사이에 북채·장구채·드럼스틱 3개씩, 양손에 모두 6개의 채를 틀어쥐고 폭풍처럼 연주하는 독창적 기법으로 오히려 일본과 유럽에서 더 유명했습니다.
아리랑 명품점의 유재만 대표는 10년 전 흑우가 세상을 떠나자 이 공간을 흑우 유품의 전시실로 꾸몄습니다. 각종 유품 200여점 중에는 흑우가 볼펜의 무한한 용도를 찬미하여 비닐부지포(가로 1m 70, 세로 1m 90의)에 백색볼펜으로 한자 한자 새겨 쓴 2만 1372자의 관음대위력(觀音大威力)이 초인의 빛을 더합니다.
흑우는 인천의 한 중학교 취주악대에서 트럼펫을 부는 것으로 음악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타악기에 빠져들었고 미8군 무대에서 직업적인 드럼 연주자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는 신중현과 함께 최초의 연주악단(그룹사운드) 애드포를 결성하여 활동했습니다. 그의 학력은 고등학교 중퇴지만 2002년 일흔의 나이에 예술적 장인으로서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타악연희과 석좌교수가 되었습니다.
그가 세서미각(細書微刻)에 빠진 것은 나이 마흔이 넘어서였습니다. 그는 작은 0.2mm 텅스텐 핀을 써서 쌀 한 톨에 반야심경 283자를 모두 새겨 넣는 초인적인 감각으로 세계기네스북에 오른 바 있습니다.
지난 3월 1일은 그가 타계한지 10주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