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태풍도 효자가 된다지요?
이번 태풍은 말 그대로 효자태풍이 아닌가 합니다.
마른장마가 계속되어 농사가 걱정되었던 때에 마침 효자비가 내렸습니다.
제게는 잊혀 지지 않는 해가 있습니다.
1994년인데요,
이때에도 태풍은 북쪽의 강력한 고기압에 밀려 올라오지 못하였고
기나긴 가뭄에 양수기를 10대 넘게 연결시켜 강에서 물을 퍼 올렸던 힘들었던 기억이 너무 생생합니다.
사무실에서는 선풍기까지 압수? 해 가버리고 고작 부채하나에 의지한 채
그 지옥 같았던 여름을 넘겼었습니다.
그 때 제가 “한해백서”를 만들었는데
지금도 군청도서관과 저의 책꽂이에는 자랑스럽게 꽂혀있습니다.
어제는 태풍으로 온종일, 밤새도록 비상근무를 했지만
효자태풍이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고 물러가 정말 다행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침 일찍 그 태풍을 불러 타고 제가 지리산과 섬진강을 유람했습니다. ㅠㅠ
태풍 타고 놀기
나크리라고 하는 녀석은 꼬리가 길고 성격도 약간 있는 놈이지만
잘만 다루면 제법 쓸모 있어 보인다
구재봉에서 녀석을 꼬드겨 등에 올라탔다
녀석의 갈기 머리를 잡고 엉덩이를 탁 치니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데
삽시간에 건너편 형제봉이 내 발아래에 있다
구름은 녀석이 지나간 자리답게 갈기갈기 찢어져 버리고
활강하는 자세로 섬진강을 미끄러지듯 내려앉다가도
삽시간에 물을 차고 치솟아 오르니 천왕봉이다
천왕봉에서 촛대봉, 벽소령,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봉우리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다시 활강하여 평사리 백사장에 녀석을 안착시키니
모래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솟아오른다
녀석은 나를 평사리 백사장에 내동댕이 쳐버리고
빗속에 나는 혼자 누웠다
태풍이 올 때면 때론 녀석들을 꼬드겨 등 위에 타고 놀아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