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소도시 지역 축제의 두 가지 딜레마
<2>
문화기획자 축제연출가 / 최정철
언제부터인가 정부가 주관하는 축제 등급 지정제가 시행되면서 우리네 지역 축제도 어느 결에 나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물론 등급 지정제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크게 보면 일단 좋은 현상이다.
이 등급 지정제가 요소요소마다 적절한 평가 기준을 제시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축제에의 주민 참여도이다. 이때의 주민 참여라는 의미는 주민이 관객이 되어 얼마나 많이 객석을 채우느냐가 아니다. 일본의 마쯔리에서처럼 직접 출연하는 방식도 있겠고, 아니면 자원봉사가 되어 운영요원으로 활약하는 방식이 바로 진정한 주민 참여다.
그렇지만 우리네 일부 소도시의 축제 담당 공무원들은 아직도 이 관점을 외면하고 있다. 특히 이들이 생각하는 ‘주민 참여’ 방식은 두 가지에 머물고 있다. 그 하나, 읍면동 단위 노래자랑대회를 축제 중심 프로그램으로 운영한다. 하루에 읍면동 서너 개씩 묶어 며칠 걸려 치러낸다. 일부러 늘려 잡아 하는 것이다. 왜냐, 그래야 주민들이 개막식에 이어 자연스럽게 ‘동원’되어 축제 일정 내내 축제장을 들썩거리게 만드는, ‘운집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마다 또 다시 선출직 분들은 어김없이 나타나 그 낭랑한 축사와 함께, “이번에 신곡 냈습니다~!” 하며 엊그제 새로 익힌 뽕짝 노래를 유감없이 불러 젖히고 말이다.
주민 노래자랑대회의 모양도 따분할 정도로 획일적이다. 역시 여기에도 그 전래의 보도인 뽕짝 음악이 주류가 되어 흘러넘치고, 창자가 노래 부르는 동안 뒤쪽에 늘어선 사람들의 꽃술을 흔든다, 현수막을 흔든다, 응원하는 모습들이 이 동네 저 마을 판에 박은 듯 다 똑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광경을 지켜보는 외래 관광객들의 심정에 무슨 감동의 물결이 일겠는가? 내가 뽕짝 음악을 저급하다고 몰아붙이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도 내 핸드폰에 뽕짝 노래 좋은 것들 잘 챙겨 가지고 다니며 즐기곤 할 정도다.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가 뽕짝에만 파묻혀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획일적인 것은 무료하기만 하고 다양함은 흥분을 일으킨다는 확연한 이치, 모를 리 없을 것 아닌가? 누구는 이런 말로 응대하기도 한다. "지역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워낙 뽕짝 노래이다 보니 어쩌겠는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축제라는 것은 평소와는 다른 일탈적인 것을 요구한다. 노래만 부르지 말고 색다른 것을 들고 나오면 그것은 나름 환영할 만하다. 그러니 평소에 아무리 좋아하는 뽕짝 노래라 하더라도 축제장에서까지 불러대는 것은 제발 자중하기를 바란다. 하늘이 무너져도 노래자랑대회를 열어야겠다면, 방법 있다. 노래방에 가라. 그곳에서 노래자랑대회 열고 점수 따져서 상품주고 박수치면 된다.
이 노래자랑대회에 참여하는 주민들의 심사도 좋을 리만은 없다. 앞에서도 얘기하였듯, 축제가 농번기에 치러지다 보니 그 바쁜 때에 모여서 연습하랴 축제장에 동원되랴, 분통 터지지 않으면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다. ‘웃분’을 위한 공무원들의 행정적 발상도 이쯤 되면 오히려 독이 된다.
또 다른 주민 참여 방식. 바로 그 지역 문화공연예술단체들이다. 이들은 동호회 성격이 강하다. 이들이 지역 축제에 출연하는 것은 용도에 따라 일견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부 단체의 출연에는 문제가 따르기도 한다. 실력이 되지 않는데도 출연 기회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으면 다음 수순으로 들어간다. 기초단체장 혹은 관청 고위 임원에게 청탁을 넣거나 축제 관련 지역 유지를 통한 압력을 넣는 것이다. 특히 지역 가수 협회들의 집요한 요구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들은 자기네 협회 회원 가수들을 한 명이라도 더 출연시키기 위해 일전도 불사한다. 그들이 불러대는 노래라는 것이 또 뽕짝 노래들이니, 그들이 떴다 하면 축제장이 온통 정신없는 뽕짝 판이 되는지라, 주민 노래자랑대회에 지역 가수 공연에, 이렇게 되면 가히 뽕짝으로 도배되는 정통 뽕짝 축제가 될 수밖에.
인구 8만 명의 경북 어느 시는 도자기 관련 축제를 행하고 있다. 전통 문화 코드가 완연한 이런 행사에 하루가 멀다 하고 뽕짝 무대가 남발되고 있는 판에 관광객들이 도자기 문화와 차 문화 체험을 통한 정신적 힐링을 할 여지가 있을 리가 과연 있겠으며 나아가 도자기 축제로서의 정체성을 과연 유지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외래 관광객들이 그들의 공연을 보고 무슨 생각들을 할까? 젊지도 않은, 최소 60대 이상 되는 노인네 분들이 가수라고 등장해서 그 부르기 힘든 창법의 뽕짝 노래를 수준 이하 목청으로 불러대는데, 어찌 좋다고 박수 쳐주겠는가? 심지어 어떤 할머니 가수는 AR 반주 틀어놓고 립싱크로 개기기까지 한다. 모름지기 소리꾼을 이를라 치면 인물치레가 우선이라고 판소리 개척자 신재효 선생께서 일찍이 오금 박은 바 있다. 그런데 60, 70 연세 드신 할머니들이 가수랍시고 납작 어묵 두께의 화장발로 무대에 올라 노래 부르는 모습이라니, 이런 참변도 있나 싶다. 외래 관광객들, 이렇게 한 번 데이고 나면 웬만하면 그 축제 다시 찾지 않을뿐더러 타인에게 추천해 줄 생각 어찌 터럭 한 올만큼이라도 있겠는가? 외래 관광객들은 그 지역에서 자랑스럽게 내놓는 고유문화를 접하고 싶어서이지, 동네 목욕탕에서 흘러 다니는 흥얼 가락 수준에도 못 미치는 지역 가수들 노래 들으러 지역 축제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 공무원들은, 이런 게 바로 주민 참여라고 꿋꿋하게 착각하며, “주민 위로 잔치도 있고 좀 북적대어야 그게 진짜 축제지!” 라는 불변의 논리로 무장되어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한 개선안으로 진즉부터 제시되고 있는 방책이 있다. 우선, 개막식을 없애거나 최소화하기.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인 뮌헨 옥토버 페스트의 개막식 내용은 시장이 술통 마개를 뽑아 첫 잔 받아들고 나서, “오 차프트 이스(O’zapft is! 맥주 통 열렸다)!” 하고 외치는 것이 전부다. 무슨 축사니 VIP소개니 일절 없고 말이다.
개막식을 굳이 해야 한다면 축제 관련자들만 조촐하게 모여 축제 개시와 성공 운영을 다짐하고 기원하는 고유제를 올리고, 간략한 축사로 그동안 준비하는 데에 고생했음을 서로 위로해주는 방식으로 축소 운영해 보자. 조금 욕심을 내자면 축제의 주제를 표현하는 짧은 퍼포먼스 한 토막 정도는 집어넣어 보고. 이러면 예산도 절약되고 관객 동원을 위한 공무원들의 고생도 사라진다. 이때 강추하고 싶은 사안 하나. 그 지역 청소년들은 가급적 동원해도 좋다. 지역 학생들로 하여금 고향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스스로 높이게 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지역 문화 계승은 물론 애향심 함양 효과도 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막식 삭제 혹은 축소. 축제 담당 공무원은 감히 이 방안을 품의 올리지 못한다. 그러니 결국은 기초단체장이 먼저 나서서 결단내야 해결 될 일이다. 기초의회 의원들도 기초단체장의 뜻에 협조해 주어야 하고 말이다. 축제장에서 주민들과 눈 마주치지 못한다고 연임에 큰 문제 생길 리 전혀 없을 것은 여물 씹던 소도 알아들을 것인데 인구 10만 안짝 소도시의 선출직 분들은 어찌하여 이것을 나 몰라라 하는지 답답하고 또 답답할 뿐이다.
경북 영덕군의 영덕대게축제에는 개막식이 깔끔하게 생략되어 있다. 주민 눈도장 찍기 축사 무대와 VIP 소개로 분위기 망치는 개막식을 시원하게 도려낸 것. 그곳 군수님과 군의원님들의 성스러운 용단에 큰 박수 보낸다.
개막식은 축제의 중심 프로그램이 절대 아니다. 그러니 아예 없애거나 최소화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요 예산 절감 등 효과도 얻을 수 있는 현실적인 전략이니 가히 시대적 요구라 할 것이다. 덧붙여, 축사를 해도 선출직 분들 중 지역 대표성을 상징하는 시장(혹은 군수) 한 사람이면 충분하고.
기초단체장 선거 제도는 민주국가의 토대가 되는 주춧돌이다. 그러나 이렇듯이 대부분의 10만 안짝 소도시에서 치러지는 우리네 지역 축제에서만큼은 악재가 되고 있는 것이 이 제도의 현실이다. 부디 기초단체장 분들의 용단이 발휘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 지역 축제 문화는 자랑거리가 되기는커녕 감추고 싶은 치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 그래도 축제에 즈음하여 주민들을 위한 잔치가 있어야 한다면 딱 부러지게 ‘시민 위문잔치’ 타이틀 걸어놓고 축제장과 동떨어진 곳에서 따로 치르는 방법. 별도의 장소 확보가 어렵다면 축제 시작 전 날 축제장에서 전야제로 운영해도 가하다. 그런 방식이라면 주민 노래자랑대회도 살고 지역 공연예술단체 공연도 근사해 보이고 지역 가수들의 요란스러운 뽕짝 메들리도 훌륭해지는 특별 갈라 파티가 될 수 있다. 문체부 지정 축제가 되고 싶어도 굳이 연예인 얼굴 좀 보고 싶다면, 이때는 불러도 무방하다. 축제와는 별개 행사라고 설정하면 축제 평가 시 감점 받지 않을 수 있다(연예인 출연 시 감점 처리). 그 뿐이랴? 선출직 분들의 눈도장 찍기 축사도 이곳에서는 듣는 사람들 귀에 딱지가 더덕더덕 붙도록 해도 된다. 이 또한 감점 처리 당하지 않는다. 축사 퍼레이드가 늘어진 고무줄이 되어 욕을 먹어도 동네 사람들한테 먹는 것이지, 외래 관광객들에게 먹는 것이 아니니만큼 대외적으로 지역 이미지 손상되지도 않는다. 외래 관광객들이야 이런 곳을 굳이 목 놓아 찾을 리도 없을뿐더러, 그 지역 사람들끼리 모여 자기네 좋아하는 방식으로 지지고 볶고 집안 잔치로 즐긴다는 데, 무슨 참견거리가 될 것인가? 그렇게 한바탕 놀자 판으로 풀어내면 관에서 바라는 소기의 목적은 충분이 달성되는 것이다. 그러니 안타까운 수준의 지역 공연물과 축제 취지에는 아무래도 부합하지 않을 동원 성격의 주민 위문잔치는 축제장에서 과감하게 분리하고, 축제장은 주제에 맞는 컨셉형 프로그램 위주로 멋들어지게, 폼 좀 나는 판으로 꾸미자는 말이다.
거듭 말하지만, 물론 축제는 주민들이 참여 주제가 되어 즐기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작년 경북 청도군에서 개최한 코미디아트 페스티벌에서 주민들이 남녀노소 팀 단위로 출연하는 방식으로 멋들어진 다양한 코드의 버라이어티 공연을 벌이는 것에 큰 감명을 받았다. 우리네에게도 저런 축제가 가능하구나, 하는 반가움에 눈물이 날 정도였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서 즐기는 축제. 그런 것이 바로 진정한 지역 축제의 면모일 것이니, 그렇게 자기들이 재미나게 즐기다보면 자연스럽게 또 하고 싶어지고,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점점 유명해지면서 결국에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궁금해서 찾아오는 식으로 축제가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대부분 지역 축제에서의 주민 여흥 프로그램이라 하면 그저 뽕짝 타령 판으로 꾸며놓고 올해도 벌이고 내년에도 벌이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뽕짝도 할 때 해야 멋들어지고 감칠 맛 나는 것이거늘 상산 자룡이 헌 창 쓰듯 해대기만 하니 신물이 나는 것이다. 과연 이런 것이 지역 주민들 스스로도 즐길 만한 것이며 타 지역 사람들에도 궁금증을 유발할 만한 것이겠는가?
이를 위해서는 전문가 참여로 이루어지는 제작 방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무리 외부 전문가가 자문해 주고 대행사 연출자가 프로그램 디자인해서 갖다 바쳐도 이것 넣어라 저것 빼라 조몰락거리면서 결국은 축제 담당 공무원들이 원하는 내용으로 프로그램들이 변질되고 마는 답답한 관행이 사라져야 한다. 내가 그동안 이곳저곳 겪어 본 바에 의하면 대부분 축제 담당 공무원들의 프로그램 구성에 대한 관점이라는 것이, 대단히 미안하지만 아무리 좋게 봐도 그저 과수원 여기저기에 주렁주렁 과일 매달아 놓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수준이다. 그래봤자 이거나 저거나 거기서 거기 아니면 축제 컨셉과 연결성 부족한 것들 늘여놓기일 뿐이다. 축제 담당 공무원들은 행정 전문가이지 결코 축제 전문가가 아니니 만큼, 부탁하건대 프로그램 제작 재량권은 축제 전문가에게 일임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축제가 축제답게 꾸며지도록 하여야 한다. 주제를 살리고 스토리텔링도 이루어지게 하여야 한다. 중심 프로그램도 장착시켜야 한다. 높은 관객 만족도를 보장하는 능란한 운영 능력을 갖추도록 하여야 한다. 과장이라고 한 마디 해서 넣고 빼고 하지 말고, 국장이라고 헛기침 한 번 해서 물꼬 확 틀어버리지 말고, 그저 관청에서는 축제 전문가들의 열정에 뒤지지 않게 행정 지원에 진력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