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필경사(唐津 筆耕舍) 충청남도 기념물 제 107호
심훈(沈熏)[1901~1936]은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1932년 서울에서 부모가 있는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로 내려왔다. 당진에 내려온 심훈은 창작 활동에 전념하면서 1934년 장편 소설 『직녀성(織女星)』을 조선 중앙 일보에 연재하고 그 원고료를 받아 손수 설계하고 집을 지어 ‘필경사(筆耕舍)’라 하였다. 심훈은 당진필경사에 살면서 둘째 아들 심재광과 셋째 아들 심재호를 낳았고, 1935년 5월 4일 기고한 장편 소설 『상록수』를 53일 만에 탈고해 동아 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장편 소설 현상 공모에 응모하여 당선되었다.
택호 ‘필경사’는 1930년 발표한 심훈의 시 「필경(筆耕)」에서 비롯한 것으로, 조선인들의 마음을 붓으로 논밭 일구듯 표현하고자 하는 심훈의 의지를 담아 "원고지에 농사 짓는 집"이라는 뜻으로 지었다.
당진필경사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상록수길 97[부곡리 251-12]에 있다. 동남향으로 자리 잡아 집 앞으로 넓은 들이, 동북쪽으로는 서해가 인접해 있다. 당진필경사 마당 앞에는 경기도 안성에서 이장한 심훈의 묘소와 상록수 문화관, 심훈 기념관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당진필경사는 심훈이 충청남도 당진으로 내려와 작품 창작에 전념하던 중에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 일대에서 농촌 계몽 운동에 헌신하고 있던 맏조카 심재영과 경기도 수원군 반월면 샘골에서 농촌 교육에 헌신하다 과로로 숨진 최용신을 모델로 하여 쓴 일제 강점기 농촌 계몽 소설의 대표작 『상록수』를 탈고한 심훈 문학의 산실로 평가받고 있다.
당진필경사에는 심훈이 사망한 이듬해부터 인근에 살던 김태룡 장로 가족이 살다가 한국 전쟁 후에는 피난민 황보은도가 살았는데, 1951년 권유희[심훈의 둘째 형인 목사 심명섭의 부인]가 추진해 이용남, 황보은도, 강도원, 이해용 등이 처음으로 당진필경사에서 예배를 드림으로써 기도처가 설립되었다. 이후 1972년까지 14대 담임 전도사가 파견되면서 당진필경사는 상록수 교회[부곡 교회]의 모태가 되었다. 1954년 당진필경사는 부곡 감리교회에 매매되었다가 1970년 심훈의 맏조카 심재영이 당진필경사를 다시 매입하였고, 이후 당진시에 희사하여 현재 당진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